베드로후서 2장 11-16절: 발람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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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천사들은 그들보다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주님 앞에서 그들을 비방하는 고발을 하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본래 잡혀서 죽을 목적으로 태어난 지각없는 짐승들과 같아서, 알지도 못하는 일들을 비방합니다. 그러다가 그들은 짐승들이 멸망하는 것 같이 멸망을 당할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저지른 불의의 값으로 해를 당합니다. 그들은 대낮에 흥청대면서 먹고 마시는 것을 낙으로 생각합니다. 그들은 티와 흠 투성이 인간들입니다. 그들은 여러분과 연회를 즐길 때에도, 자기들의 속임수를 꾀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간음할 상대자들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죄를 짓기를 그치지 않습니다. 그들은 들뜬 영혼들을 유혹하며, 그들의 마음은 탐욕을 채우는 데에 익숙합니다. 그들은 저주받은 자식들입니다. 그들은 바른 길을 버리고, 그릇된 길로 갔습니다. 불의의 삯을 사랑한 불의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라간 것입니다. 그러나 발람은 자기의 범죄에 대하여 책망을 들었습니다. 말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예언자의 미친 행동을 막은 것입니다.

해설:

“그들”(11절)은 이단을 끌어들이는 거짓 교사들을 가리킨다. 천사들은 그들의 불의와 불법을 알면서도 하나님 앞에서 그들을 고발하지 않는다. 심판은 오직 심판자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거짓 교사들은 “지각 없는 짐승”(12절)과 같아서 “알지도 못하는 일들을 비방”한다. 그들은 짐승같이 살다가 “자기들이 저지른 불의의 값으로”(13절) 짐승같이 죽음을 당할 것이다. 

이어서 사도는 거짓 교사들의 소행을 구체적으로 나열한다. 그들의 행동은 앞에서 말한 “지각 없는 짐승”과 같다. 그들은 “대낮에 흥청대면서 먹고 마시는 것을 낙으로”(13절) 생각한다. “티와 흠”은 불의와 부정을 의미한다. “그들은 여러분과 연회를 즐길 때에도, 자기들의 속임수를 꾀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한 것을 보면, 거짓 교사들은 교회 안에서 비밀스럽게 활동하고 있다. 그들은 교회로 모여 “간음할 상대자들”(14절)을 찾아다니고, 그것이 죄인 줄 알면서도 끊으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들뜬 영혼들”을 미혹한다. 헬라어 ‘아스테릭토스’는 뿌리가 깊지 못하여 쉽게 흔들리는 상태를 의미한다. 거짓 예언자들은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는 일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그들에게는 저주가 정해져 있다. 

여기서 사도는 거짓 교사들을 민수기 22-24장에 나오는 발람에게 비유한다(15-16절). 발람은 “바른 길을 버리고, 그릇된 길로 갔던”(15절)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모압 왕이 제시한 “불의의 삯”을 탐하여 결국 죄를 범하게 된다. 그러나 발람은 나귀로부터 책망을 듣고 악행의 길에서 멈추었다. 거짓 교사들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지만,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그릇된 길로 간다. 사도는 그것을 “미친 행동”(16절)이라고 부른다. 

묵상:

“들뜬 영혼”은 거짓 교사들에게 흔들리는 사람들의 본성을 적확하게 짚어낸 표현입니다. 우리말 표현에서 “들뜨다”는 무엇인가에 의해 살짝 흥분되어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개역개정의 “굳세지 못한 영혼”이라는 번역이 더 좋습니다. “뿌리 내리지 못한 영혼”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자신이 무엇을 왜 믿는지 분명히 알지 못하면, 거짓 교사들에게 미혹 당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동안 나타났던 이단 종파는 기존의 신자들의 믿음을 흔들어 자신들의 교리로 끌어들이곤 했습니다. 기존 교회가 이단 종파에 ‘신도 공급원’이 되었던 것입니다.

죄악의 정도로 따지면, 이단 종파에 걸려드는 “굳세지 못한 영혼들”의 죄의 무게보다 그들을 미혹하는 거짓 교사들의 죄의 무게가 훨씬 큽니다. 그들은 “바른 길”을 알면서도 “불의의 삯”을 위해 “그릇된 길”을 택했기 때문이고, 교활한 속임수로 사람들을 속여서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 하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넷플렉스에서 방영된 <나는 신이다>라는 다큐멘터리는 대표적인 이단 종파의 지도자들의 비행을 폭로했는데, 보통 사람으로서는 구역질이 나서 끝까지 시청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우리의 낮은 도덕성에도 치가 떨린다면, 하나님께서 보기시에는 얼마나 더 그렇겠습니까?

그들의 숨겨진 마각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났음에도 많은 추종자들이 눈 질끈 감고 그들을 옹호하는 모습은 인간에 대한 연민을 자극합니다. 인간이 얼마나 악할 수 있으며, 또한 얼마나 무지몽매할 수 있는지를 절감하기 때문입니다. 사도가 거짓 교사들에 대해 “미친 행동”을 하고 있다고 했는데,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싶습니다. 인간이 짐승보다 우월하다지만, 이성을 잃으면 짐승보다 못한 존재가 됩니다. 

요절: 15절

그들은 바른 길을 버리고, 그릇된 길로 갔습니다. 불의의 삯을 사랑한 불의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라간 것입니다.

기도:

주님, 발람처럼 저희도, 바른 길을 알면서도 그릇된 길을 택하곤 합니다. 그로 인해 저희의 믿음이 견고하지 못합니다. 저희의 마음을 붙들어 주시어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서게 해주십시오. 아멘.  

4 responses

  1.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청명하고 시원한 월요일 아침. 창밖에는 새소리가 창조의 기쁨을 노래합니다.

    오늘의 본문(벧후2:11-16)을 읽습니다. 계속 이어지는 거짓 교사 곧 이단에 대한 경계. 이단은 성경을 사사로이 풀어 왜곡하는 신학적 타락에서 시작되지만 타락한 삶의 방식 곧 쾌락과 정욕의 올무로 그 세력을 넓힌다는 경고는 지금도 유효한 것이겠지요?

    목사님의 주일 설교 말씀처럼 영의 근력을 키우기 위한 운동(묵상과 기도)이 매일 필요한 것은 세상 유혹에 따라 이리저리 떠다니는 마음을 십자가의 닻줄로 매일 다시 고쳐 묶기 위해서겠지요?

    이제 하루를 시작하려 합니다. 간 밤에는 잠을 제법 푹 잤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빵과 커피도 먹었습니다. 하루의 일상이 별일 없이 이어지고 있어서, 공기처럼 누리는 평화와 안전, 자유로 인해 감사. 가족을 주심에 감사.

    죄와 유혹에 걸려 넘어지는 자. 세상 풍조를 따라 늘상 떠도는 마음. 주를 기억하는 하루.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며 포도나무 되신 주 안에 가지로 붙어있는 나날. 그것이 나의 삶의 이야기, 나의 노래가 되었으면.

  2. Bill Kim Avatar
    Bill Kim

    확고부동한 믿음을 원합니다, 비록 따돌림을 당하더라도 주님안에서 경건한 삶을 살아야함을 알면서도 세상의 흐름에 같이 흘러내려가는 삶을 살아오지 않았는지 되돌아보니 마음이 씁슬합니다.
    허락하신 십자가를 감사히 지고 앞서가시는 거룩한 십자가의길을 한결같은 삶으로 걷도록 도와주십시오. 본향에 도착할때까지—- 아멘.

  3. gachi049 Avatar
    gachi049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만사형통하고 좋은 일만 일어난다는 기복주의와 사탕발림 같은 미혹의 영에 넘어져 가는 세태를 바라봅니다. 신실하신 주님은 온데간데없고, 돈과 권력을 의지하며 규모가 커질수록 교만과 욕망으로 뭉쳐진 인간이 주인이 되어버리는 안타까운 모습들을 목격합니다. 주님, 우리 ‘사귐의 교회’ 는 오직 신실하신 주님만이 주인이 되시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어떤 고난이 닥쳐와도 주께서 주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는 신실한 하나님의 교회, 오로지 십자가만을 바라보는 참된 믿음의 공동체가 되도록 성령께서 친히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4.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어제 우리 교회에는 몇 달 전부터 계획되어 있던 일정에 따라 서부지역의 대표적인 신학대학원에서 부총장직과 한인교회와 동문회 일을 하시는 목사님이 오셔서 설교하셨습니다. 열왕기상 19장에서 엘리야가 예언자들을 죽이는 아합 왕과 그의 아내 이세벨의 칼을 피해 도망을 다니다 시내산의 동굴에서 밤을 지샐 때 하나님이 그를 찾아와 하신 말씀을 배경으로 하는 설교였습니다. 센 바람 안에도, 지진 속에도, 지진 뒤의 불 속에도 계시지 않던 하나님을 조용하고 부드러운 ‘세미한’ 음성으로 만나는 장면입니다. 동굴 앞에 선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엘리야야 어찌하여 여기에 있느냐?’ 물으십니다. 설교자는 작년 1월 초에 일어났던 엘에이 대형 산불 사고 당시를 회상하며 대피하던 때의 심정과 나중에 돌아온 뒤 지금까지 계속 씨름하는 실존적인 질문들을 교회와 나누었습니다. 대피 명령을 받고 부인과 본인 각자 캐리온 가방 한 개씩 쌀 때의 마음을 이야기할 때 나 또한 깊은 공감을 했습니다. 우리집은 당시의 산불 지역과 인접한 곳이 아니지만 하필 윗동네 어느집에 불이 나서 불자동차 다니는 소리가 가까이에서 울리는 등 불안과 공포가 매일 대단했습니다. 우리도 가방을 싸야 할까, 뭘 챙겨야 할까, 정말 대피해야 할까…등등을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상당했습니다. 설교 목사님은 상담심리학 수업 가운데 일련의 재난이나 위기 상황을 가상으로 설정한 뒤에 그 때 챙겨야 할 품목들을 만들어 보라는 과제가 있는데 그 리스트는 인생을 아주 잘 보여주는 자료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설교 메시지는 작은 소리로 다가오는 하나님의 질문에 대한 본인의 성찰이었습니다. 왜 여기에 있느냐고 엘리야에게 물으시는 음성이 계속해서 자신의 마음 속에 일어난다는겁니다. 화재에 집을 잃지는 않았지만 가지고 있던 물건이 너무 많다는 자각에서부터 물건 뿐 아니라 자신을 나누고 비우는 일에 대한 깨달음도 나누었습니다. 위기 앞에서는 물론이요 평범한 날들에도 왜 사는지, 무엇을 하며 사는지를 묻고 그 답을 찾는다는 거지요. 베드로 사도는 이단을 경계하라는 당부를 이어가면서 발람과 나귀의 이야기를 환기 시킵니다. 말 못하는 짐승도 가면 안된다는 판단을 하는데, 사람의 일을 알고 왕의 조언자라 자처하는 발람은 오락가락합니다. 결국에는 욕심을 따라 멸망의 길을 택합니다. 악의 특징 중에서 평범성이 가장 무서운 것처럼 -악이라는 표시가 없으니까, 악인 줄 알면 도망갈텐데 그냥 평범해 보이니까 속습니다- 이단이 파고드는 것도 우리의 허전함 때문입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관계의 골치 아픔, 육신의 병 같이 공허와 고독 속에 빠뜨리는 일들을 만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흔들립니다. 어쩌면 판단을 못해서가 아니라 판단을 안하도록, 판단하지 않도록 조종하기 때문에 넘어가는 건지도 모릅니다. 마음의 경계를 풀게 하고, 다 잘 될 것이라고 다독이고, 해결해 주겠다고 유혹하면 누구나 다 맡기고 싶어질겁니다. 이단은 진리인 척 카피한 모조품이지 혁신적이고 혁명적인 다른 진리가 아닙니다. 컬트 리더들이 하는 말은 그럴싸한 진리입니다. 들어보니 일리가 있습니다.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처음부터 말하지 않습니다. 메주는 콩으로 쑨다 (=진리)고 잘 아는 사람이라도 어느날부터 팥을 콩으로 보기 시작하면 게임은 끝난겁니다. 악에 속은거고, 이단이 된겁니다. 판단의 근거를 흐릿하게 만들거나 옮겨 버리면 누구나 속아 넘어가게 됩니다. 광활한 땅 -농경지이든 유목지이든 -이 있는데 누군가가 경계 표시를 지우거나 조금씩 움직인다면 내 땅인지 이웃집 땅인지 모르게 될 수도 있겠습니다. 진리는 세미한 음성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나귀의 입에서 나오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매일 묵상하고 마음에 새기는 이유는 진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예수님만 따르기를 원합니다. 성령의 빛을 따라 어두운 세상에서 길을 잃지 않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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