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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2개월 동안 여호수아서를 읽고 묵상합니다. 올해 초에 민수기를 읽었는데, 여호수아기는 그것에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신명기는 모압 평야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준 설교입니다. 설교가 끝난 후 모세는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세우고 열두 지파를 축복한 다음 느보 산에서 생을 마칩니다. 따라서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자면 민수기에서 여호수아기로 가야 합니다.
모세가 세상을 떠난 후,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가, 여러 차례의 정복 전쟁을 치루어 가나안 땅을 점령하고, 열두 지파에게 땅을 분배해 줍니다. 여호수아기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1장부터 12장은 정복 전쟁 이야기입니다.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닌 분들이라면 여호수아의 전쟁 이야기들을 들어 알고 있을 텐데, 대부분 전반부에 나오는 이야기들입니다. 13장부터 21장까지는 정복한 땅을 지파별로 분배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부분은 가나안 땅의 지리를 알아야 이해하기 쉽습니다. 22장부터 24장까지는 여호수아의 설교와 죽음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호수아기의 내용은 아브라함을 불러내면서 시작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실현되는 과정의 이야기입니다. 시간적으로 본다면 칠백 년이 넘는 긴 우회로를 지나 실현되었습니다. 완성된 것이 아니라 새로이 시작되었다고 해야 정확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름을 따라 나선 후 야곱의 가솔 칠십여 명이 이집트로 내려가기까지가 약 이백여 년이고, 이집트에서 머문 시간이 약 사백여 년이며, 광야 유랑이 사십 년이었습니다.
문학 양식으로 본다면, 여호수아기는 “역사적 고백” 혹은 “고백으로서의 역사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기는 사무엘기와 열왕기를 기록한 사람들에 의해 기록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바빌로니아에게 패망하여 포로로 잡혀 갔던 그들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기원하며 그동안의 역사를 정리합니다. 단순히 역사적 관심사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셨고, 그 계획을 이루기 위해 어떤 은혜를 베푸셨으며, 우리는 어떤 점에서 실패했는가?”를 확인하기 위한 작업이었습니다.
여기서 유대인들의 민족적 탁월성이 드러납니다. 민족적 위기에 처하여 지난 역사를 정리하면서 자신들이 누구이며 어떤 사명을 부여받은 존재인지를 확인합니다. 그 과정에서 성령의 영감이 임했고, 후대 독자들은 그 “고백적 역사 이야기”를 읽으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사명을 재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유대인들의 놀라운 회복탄력성의 원인이 되어 주었습니다.
현대 독자들은 여호수아기와 사사기를 읽으면서 전쟁 과정에서 드러난 잔인성과 야만성에 당혹감을 느끼곤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정복당한 민족을 완전히 제거하라고 명령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은 그 명령을 그대로 실행하기 때문입니다. 여자와 어린아이뿐 아니라 가축까지, 생명 있는 것은 모두 끊어버리라는 “진멸”(히브리어 ‘헤렘’)의 명령은 우리가 아는 정의와 사랑의 하나님에게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습니다. 현대적 기준으로 하자면, 이스라엘의 정복 전쟁은 “인종청소”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기를 “역사적 고백”으로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역사 이야기들은 바빌로니아에 의해 패망하여 포로로 잡혀 온 사람들이 과거에 하나님께서 자기 조상들에게 얼마나 압도적인 은혜를 베푸셨는지를 강조하기 위한 수사적 표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강조될수록 그 은혜를 저버린 자신들의 죄가 더 부각되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들은 “지금도 하나님이 함께 하면 어떤 전쟁에서든 이길 수 있다”는 교훈을 주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 민족은 이토록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민족이니, 하나님을 의지하고 희망을 가지라”는 교훈을 주기 위함입니다.
우리 나라의 역사적 사건들 중에 이순신 장군의 해전 이야기는 가장 자주 소설이나 영화의 소재가 되었습니다. 그럴 경우, 작가나 감독은 역사를 정밀하게 재구성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역사가들이 할 일입니다. 작가나 감독은 역사적 정확성이 아니라 역사적 교훈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 선에서 승리의 “압도성”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그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보면서 감동하고 환호합니다. 그러한 감동은 자신의 정체성과 역사적 전통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게 만듭니다.
여호수아기와 사사기를 읽는 동안 우리는 “객관적인 관찰자” 시점이 아니라 “새 이스라엘의 백성”으로서 읽어야 합니다. “저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로 읽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고, “새 이스라엘 백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읽을 때, 우리는 “새 이스라엘 백성”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용기와 지혜를 얻을 것입니다. 불신의 땅에서 믿음의 길을 가는 우리도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과 같고,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잡혀 간 유대인과 같기 때문입니다. 이 불신의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룩하게 살아가는 것은 정복전쟁이나 포로생활만큼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읽고 묵상할 때, 전쟁 이야기들은 어릴 때 읽고 느꼈던 것과는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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