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1장 1-21절: 애도 기간이 끝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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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여호수아가 죽은 뒤에, 이스라엘 자손이 주님께 여쭈었다. “우리 가운데 어느 지파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워야 합니까?”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유다 지파가 먼저 올라가거라. 내가 그 땅을 유다 지파의 손에 넘겨 주었다.” 그 때에 유다 지파 사람들이 자기들의 동기인 시므온 지파 사람들에게 제안하였다. “우리와 함께 우리 몫으로 정해진 땅으로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을 치자. 그러면 우리도 너희 몫으로 정해진 땅으로 함께 싸우러 올라가겠다.” 그리하여 시므온 지파가 유다 지파와 함께 진군하였다. (1-3절)

(중략)

유다 지파 사람들이 그들의 동기인 시므온 지파 사람들과 함께, 스밧에 사는 가나안 족속에게 쳐들어가서, 그들을 무찌르고, 그 곳을 전멸시켰다. 그래서 그 성읍의 이름을 호르마라고 부른다. 또 유다 지파 사람들은, 가사와 그 지역 일대와, 아스글론과 그 지역 일대와, 에그론과 그 지역 일대를 점령하였다. 주님께서 유다 지파 사람들과 함께 계셨으므로, 그들은 산간지방을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낮은 지대에 살고 있는 거민들은, 철 병거로 방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쫓아내지 못하였다. 그들은, 모세가 명령한 대로, 헤브론을 갈렙에게 주었다. 갈렙은 거기서 아낙의 세 아들을 쫓아냈다. 그러나 베냐민 자손이 예루살렘에 사는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사람이 오늘날까지 예루살렘에서 베냐민 자손과 함께 살고 있다. (17-21절)

해설:

여호수아가 세상을 떠났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의 일부만을 점령했다. 여호수아는 아직 점령하지 않은 땅까지 열두 지파에게 분배해 주었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 이스라엘 백성은 정복 전쟁을 재개해야 했다. 여호수아는 후계자를 세우지 않고 죽었으므로 지도력 공백 상태가 생겼다. 따라서 첫 사사가 나올 때까지 각 지파의 지도자들 중심의 과두체제로 운영되었을 것이다.

여호수아의 죽음에 대한 애도 기간이 끝나고 나자, 지파의 지도자들이 모여서 어느 지파부터 정복 전쟁을 시작해야 하는지를 두고 하나님께 여쭈었다(1절). 하나님께서는 유다 지파부터 시작하라고 하신다(2절). 이 즈음에 이미 유다 지파는 열두 지파 중에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유다 지파는 시므온 지파에게 도움을 청했고, 시므온 지파는 유다 지파의 정복 전쟁에 참여한다. 시므온 지파에게 분배된 땅이 유다 지파의 땅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다(3절).

유다 지파와 시므온 지파 연합군은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을 몰아내고 그 땅을 점령했고, 베섹의 왕 아도니베섹을 사로잡아 그가 다른 민족의 왕들에게 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응징한다(4-7절). 두 지파 연합군은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헤브론도 점령한다(8-10절). 헤브론은 후에 다윗이 왕으로 추도된 곳이고,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로서 “다윗 성”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저자(들)은 여호수아 15장 13-19절에 나오는 갈렙의 이야기를 여기에 다시 적는다(11-15절). 연합군은 계속하여 광야 지방과 산간 지방을 차례로 점령한다(16-18절). 하지만 낮은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철병거를 가지고 대항했기 때문에 점령하지 못했다(19절). 유다 지파에 속했던 갈렙은 헤브론 땅을 받았고, 갈렙은 그 성을 점령한다(20절). 유다 지파는 점령한 예루살렘을 베냐민 지파에게 내어 주었는데, 베냐민 지파는 그곳에 살고 있던 여부스 사람을 다 쫓아내지 못하고 그곳에 함께 살게 된다(21절).

묵상: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나는 날, 그들은 “이제 됐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 앞에는 길고 긴 광야 유랑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십 년의 광야 유랑이 끝나고 요단 강 동편 모압 평야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또 다시 “이제 다 됐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 땅을 점령해야 했습니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 아래에 있었지만,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눈물과 땀과 피가 필요했습니다. 여호수아의 지도력 하에서 지난한 정복 전쟁을 끝내고 영토를 분할 받았을 때에도 다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죽음에 대한 애도 기간이 끝난 후, 그들은 남은 땅을 점령하기 위한 전쟁을 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여기서 보듯, 인생 여정에 완전한 끝은 없습니다. 완전한 끝은 죽음의 순간에 찾아옵니다. 그 이전까지는 하나의 소임을 끝내면 또 다른 소임을 만나고, 하나의 도전을 극복하면 또 다른 도전을 마주하게 되어 있습니다. 개인의 삶도 그렇고, 한 사회 혹은 한 국가의 삶도 그렇습니다. 때로 우리는 모든 문제가 한번에 해결되기를 바라지만, 그런 일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진 후에나 가능합니다. 그 이전까지 우리는 늘 새로운 도전과 과제와 문제를 마주해야 하고 풀어야 합니다.

유다 지파의 정복 전쟁을 서술하면서 저자(들)은 “주님께서 도우셨다”는 표현을 두 번 반복합니다(4절, 19절). 주님께서는 가나안 백성의 죄악을 심판하고 이스라엘을 제사장의 나라로 세우기 위한 계획을 세우셨고, 그 계획을 이루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십니다. 그들이 주님의 계획 안에서 그분의 뜻을 행할 때, 주님께서는 그들을 도우셔서 그 계획을 이루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언제나 주님의 계획 안에서 움직인 것은 아닙니다. 베냐민 지파가 그러했듯, 때로 주님의 뜻을 다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후일에 큰 불행을 겪어야 했습니다.

인생 여정에서 중요한 것은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 계획을 우리는 다 알지 못합니다. 다만 그분의 주권을 인정하고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신실하게 걸어갈 뿐입니다. 그럴 때 우리의 작은 손짓까지도 그분의 계획을 이루는 일에 사용하실 것입니다.

기도:

주인의 자리에서 내려와 참된 주인이신 주님 앞에 머리 숙입니다. 주님의 거대한 계획에 저희의 작은 몸짓은 티끌만도 못하지만, 주님은 그 작은 몸짓을 크게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오늘도 주님께 온전히 의지하고 주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에 맡기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4 responses

  1. Young j kim Avatar
    Young j kim

    하나님, 지금까지 저희의 생사화복을 주장해 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신명기 30:19, 32:39, 사무엘상 2:6~7, 이사야 45:7, 예레미야 애가 3:38 등). 저희의 일거수일투족을 주관하시는 주님만을 오직 의지하오니, 남은 여정 동안 주의 뜻과 명령을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늘 동행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푸르고 승강장에는 쌀쌀한 바람이 일렁입니다.
    화요일 아침.

    사사기(삿1:1-21), 계속되는 전쟁 이야기. 여호수아가 죽고 딱히 지명된 후계자가 없었다는 정황. 그리고 이후의 정복 전쟁이 각 지파의 각자 도생 행위로 나타나는 정황 등이 눈에 들어옵니다. 또 전쟁? 정복이 끝나고 기업의 분배와 언약갱신까지 완결된 것 아니었나?

    마치 그 모든 일이 없었다는 듯. 여호수아가 죽은 것 외에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은 없다는 듯. 솔직히 좀 황당한 느낌을 주는 도입부. 우리 인생도 그런 면이 있겠지요? 큰 난관과 도전을 극복하고 의미있는 엔딩을 마쳤다고 생각한 그 다음 날, 마치 시간의 되돌이표를 만난 것처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똑 닮은 다른 전쟁터에서 struggle하고 있는 나를 보는 것. 이 전쟁은 언제 끝나는 걸까요? 끝나기는 할까요?

    메트로를 타고 출근합니다. 요 몇 일 몸이 좀 좋지 않네요. 좀 애썼지만 그래고 잠을 잤고, 빵과 커피를 잘 먹었고, 이렇게 일 하러 갈 수 있어서 감사. 끝없는 전쟁 같은 인생. 지금까지 저와 제 가족을 지키시고 도우신 이, 에벤에셀. 그 이름을 부르고, 기억하는 하루가 되기를. 내가 약할 때, 나의 도움이 되시고 나의 강함이 되시는 이. 내가 눈을 들어 산을 볼 때, 두려워 떨며 하늘을 볼 때. 나의 도움이 거기에서.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 오는 것을 보고, 체험하며, 노래라는 날들. 그런 삶을 제게, 우리에게 내려주시길.

  3. billkim9707 Avatar
    billkim9707

    생각과 마음으로는 주님을 나의 구세주 이십니다, 그러나 손과 발에서 너머진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하루의 일상이 영적 전쟁입니다, 끝이 없는 전쟁입니다, 거룩한 영의 인도하심 없이는 희망이 없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주님께 영광드리는 승리의 하루가 되도록—- 아멘.

  4.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이스라엘은 또 다시 가보지 않은 땅, 처음 겪는 일 앞에 섰습니다. 백성을 이끄는 지도자 없이 지파별로 알아서 가나안에 살아 남아야 합니다. 생존은 기본이고 다스리고 번성하는 데까지 가야 합니다. 잘 할 수 있을까요. 여호수아는 마지막에 순종을 당부했습니다. 이방신을 따르지 말고 오직 야훼를 섬기라는 명령을 남겼습니다. 백성은 아직 정복하지 못한 땅을 싸워서 쟁취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땅을 지배하는 이방의 신들을 몰아내야 합니다. 가나안의 백성 뿐 아니라 백성의 정신을 지배하는 이방신들도 다 없애야 합니다. 몸으로 싸우는 전쟁과 마음과 영혼의 전쟁을 같이 싸우는겁니다. 우리는 스포츠 메타포에 익숙합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경기와 관련된 비유와 상징을 빌려 사용합니다. 락커룸 인용어 locker room quotes 도 있습니다. 선수들을 정신무장하면서 코치가 한 유명한 말들입니다. 어떤 경기든 체력 만으로 싸우는게 아니라는걸 보여줍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뒤 이스라엘엔 코치가 없었습니다. 싸우는 순서도 몰랐습니다. 한 사람이 이끌어 나가던 것을 지파별로 나누어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파워의 분산으로 봐야 할까요. 사사기의 연대는 주전 1390년부터 1000년 정도라고 봅니다. 이 때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 알 수 없는 해양 민족 Sea Peoples 이 철기로 된 무기와 잘 조직된 군사력으로 지중해 지역을 강타했습니다. 이집트의 영향 아래에 있던 가나안 북부 지방은 해양 민족과의 전쟁을 감당할 수 없는 이방 부족들이었습니다. 이집트를 비롯해 강국들은 해양 민족의 침략에 재정과 군사력의 큰 손실을 봅니다. 열강의 쇠퇴는 권력의 공백을 가져 오고 이로써 초기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을 정복하며 세력을 확장해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역사와 고고학계의 일반적인 견해랍니다. 사사기 시대는 언약 신학의 렌즈가 아닌 세계사적 렌즈로 보면 청동기 시대의 붕괴가 만든 지정학적 재편의 최대 ‘수혜자’로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의 기록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흥미롭지요. 이스라엘은 밖에서도 (국제적으로) 안에서도 (내부적으로) 권력의 공백을 경험합니다. 공백을 메우려는건 인간의 보통 심리입니다. 자연의 법칙이기도 합니다. 하나님만을 섬기겠다는 백성의 다짐은 일반적이고 자연스러운 일들 마저도 넘어 서겠다는 약속입니다. 주님, 우리를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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