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2장 6-10절: 주님을 알지 못하는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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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여호수아가 모인 백성을 흩어 보낸 뒤에, 이스라엘 자손은 각각 자기가 유산으로 받은 땅으로 가서, 그 땅을 차지하였다. 온 백성은 여호수아가 살아 있는 동안 주님을 잘 섬겼다. 그들은 여호수아가 죽은 뒤에도,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큰 일을 모두 눈으로 직접 본 장로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주님을 잘 섬겼다. 주님의 종인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백열 살에 죽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가 유산으로 받은 땅의 경계선 안 에브라임 산간지방인 가아스 산 북쪽 딤낫헤레스에 그를 묻었다. 그리고 그 세대 사람들도 모두 죽어 조상들에게로 돌아갔다. 그들이 죽은 뒤에 새로운 세대가 일어났는데, 그들은 주님을 알지 못하고,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돌보신 일도 알지 못하였다.

해설:

6절부터 9절은 여호수아기 24장 29-31절과 동일하다. 여호수아가 땅 분배를 모두 마친 후에 백십 세에 죽어 에브라임 산간 지방에 장사 되었다. 여호수아가 살아 있는 동안 그리고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직접 본 지도자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이스라엘 백성은 주님을 잘 섬겼다. 이 말을 뒤집으면, 그들이 죽은 후에는 잘 섬기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들이 모두 죽은 후에 일어난 새로운 세대에 대해 저자(들)은 “그들은 주님을 알지 못하고,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돌보신 일도 알지 못하였다”(10절)고 설명한다. “알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야다’로서 “겪어 아는 앎”을 말한다. 그것이 주님을 잘 섬기지 못한 주된 원인이었다. 주님께 대한 믿음이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가나안 토착민들과 섞어 살다 보니, 자연히 그들의 우상 숭배에 물들게 되었다.

묵상:

출애굽 1세대는 이집트에서의 노예 살이, 해방, 광야에서의 유랑 등 온갖 고난과 역경을 지나오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했습니다. 출애굽 2세대 역시 광야 유랑과 요단 강 도강 그리고 여러 번의 정복 전쟁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했습니다. 반면, 가나안 정착 1세대와 그 이후 세대는 안정과 번영과 풍요를 누렸지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할 만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환경적인 안정과 물질적인 풍요가 영적인 결함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인간은 역설적인 존재입니다. 고난과 역경 가운데 처하면 하나님을 찾고, 그러는 중에 그분의 살아계심을 체험합니다. 반면, 모든 것이 안정되고 넉넉한 환경에서는 하나님을 망각하고 욕망을 따라 삽니다. 인간은 한계적인 상황에 처해야만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사실을 체험합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의 열에 아홉은 고난과 역경 중에 그런 경험을 했다고 말합니다. 안정되고 풍요로운 환경에 사는 사람들이 단기 혹은 장기로 선교 현장을 찾아가는 이유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생생하게 체험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출애굽 1세대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 그리고 보리고개를 지나 온 노년 세대에 비할 수 있습니다. 그 세대 어른들의 믿음이 죽음을 불사할 정도로 강력한 이유는 온갖 역경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 2세대는 보리 고개와 유신 독재와 산업화를 겪어 온 베이비 부머 세대에 비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전쟁을 겪어보지 못했지만, 어려운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분투했습니다. 그들에게도 하나님은 살아 역사하는 분이었습니다. 부머 세대가 노년 세대의 일사각오의 믿음을 어느 정도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그 뒤를 이은 엑스 세대, 밀레니얼 세대 그리고 젠지 세대는 안정과 번영과 풍요를 구가한 세대입니다. 출애굽 1세대와 2세대가 피땀흘려 가꾼 나무의 열매를 가나안 정착 이후의 세대가 누린 것처럼, 엑스 세대로부터 젠지 세대는 그 이전 세대가 온갖 역경과 고난을 겪으며 가꾼 열매를 누렸습니다. 그들에게 그것은 큰 행운인데, 안정과 풍요로 인해 가나안 정착 세대처럼 하나님을 “겪어 알”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누리는 물리적인 복이 영적인 화가 된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사사기는 오늘의 독자에게 매우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다음 세대가 어떻게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이어가게 할 것인가?”

기도:

주님을 “겪어 아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돌아보니 고난이 복의 통로였습니다. 저희의 이 믿음이 저희의 자녀 세대에게도 이어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안정과 풍요에 함몰되어 주님을 잊지 않게 해주십시오. 저희가 그들에게 주님 살아계심의 증인으로 살게 해주십시오. 아멘.

3 responses

  1. billkim9707 Avatar
    billkim9707

    젊었을 때의 가난과 어려움이 축복 이였습니다. 주님을 믿고 의지하게 된것이 가난과 어려움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신 축복을 누리기만 했지 믿음의 유산을 다음 세대에 전심전력으로 전수 하지못한 저희들의 죄를 긍휼이 여겨 주십시오. 십자가 밑에서 다시 무릎을 끓습니다. 십자가의 문을 항상 열어 놓으신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려 오립니다. 아멘.

  2. tenderlya0860fa447 Avatar
    tenderlya0860fa447

    푸른 하늘의 한 쪽을 솜털구름이 온통 수놓고 있는 아침, 금요일입니다. 날씨는 이제 쌀쌀함을 지나 좀 으슬으슬 하네요.

    본문(갓2:6-11)을 읽습니다. 여호수아기 말미에 한번 나왔던 내용의 복붙(copy and paste). 여호수아와 그 당대의 사람들(출애굽 제2세대)이 지나나고 그 다음 세대는 여호와와 그의 구원을 알지 못했다는 얘기. 알지 못했다? 왜? 제사와 율법, 레위인, 성전, 제사장과 교사들. 그 모든 종교제도는 다 쓸모없는 것이었을까요? “알다”(yada)라는 단어를 체험의 언어(부부가 서로를 체험해 알 듯이 암)로 풀어낸 목사님의 해석이 어느 정도 답을 주네요. 또 체험의 개인적 특성, 즉 한 개인(부모)의 체험을 다른 개인 (자녀)에게 넘겨주지 못한다는 측면도 생각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이삭에게는 이삭의 하나님이 있었듯. 우리가 체험한 하나님을 우리 자녀들도 개인적으로 직접 만나 알게되는 그런 체험이 있기를. 아니 주시기를 간구할 뿐.

    이제 하루를 시작하려 합니다. 몸도 좀 불편하고 업무 스트레스도 한계점에 닿았던 한 주. 일도 어느 정도 마무리할 수 있었고 몸도 이제는 거의 회복되고 있네요. 밤에 자게, 아침엔 깨어나 오늘의 창을 열게 하시는 이, 일용할 양식, 쉴 집, 일, 가족을 주신 이. 임마뉴엘, 주님을 찬양.

    삶이 어려울 때, 시험과 고통을 당할 때, 아파서 약하고, 마음이 무섭고 두려울 때, 주를 기억하게 하시고, 주의 얼굴, 그 권능과 사랑의 광채를 보게 하시길. 여호와 라파. 그 치유의 손으로 만지시사 우리를 온전케 하시고, 모든 것을 선하게 예비하셔서 주와 함께 세상을 이기게 해주시길. 아바. 아버지.

  3. young mae kim Avatar
    young mae kim

    이스라엘에게는 우상 숭배가 가장 큰 이슈였습니다. 창조주 하나님 한 분만을 경외하고 따르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다’고 믿지 않으면, 즉,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이 있다거나, 하나님도 많은 신들 가운데 하나의 중요한 신이라고 생각한다면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명령은 의미 없는 명령입니다. 우상은 상대화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을 유일하고 절대적인 신이라고 믿으면 다른 것 (존재, 물건)을 신으로 섬기지 않습니다. 우상 숭배는 절대자를 상대화하는 일이고, 유일을 다수로 대체하는 일입니다. 유일신 사상이 없는 사람이나 세상에는 여러 신이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 우상 숭배라는 말은 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그에겐 우상이 아니라 신상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출발점부터 다릅니다. 역사의 시공에 따라 나의 믿음도 출발점이 달랐을 것입니다. 옆 나라 일본에서 태어나 자랐다면, 한국이라도 한국 전쟁 이전에 태어났다면, 인생의 경험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틀이 달랐을 지 모릅니다. 나와 동시대 크리스찬의 고민 가운데 하나는 자녀의 믿음 생활입니다. 자녀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기를 원하지만 그 바램은 상대적입니다. 물질적인 안정의 기준이 다 다르고, 사회적 가치에 대해서도 생각이 다릅니다. 그러나 믿음 만큼은 같습니다.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리라. As for me and my house, we will serve the Lord (여호수아 24:15).’ 이 말씀이 우리 집, 우리 자녀에서도 실현되기를 바랍니다. 이 기도는 이 시대 크리스찬 부모의 공동기도일 것입니다. 교회의 앞날을 걱정하는 것도, 세상의 변화가 두려운 것도, 인공지능의 능력이 불안한 것도 이 기도의 방해물, 걸림돌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이 하나님 외에도 옵션이 있다고 생각하니 두렵고, 신앙보다 중요한게 많다고 생각하니 두렵습니다. 하나님 아닌데 하나님처럼 여기는 것들이 많으니 그게 가장 큰 걱정입니다. 식당의 맛과 서비스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미셸린 스타입니다. 별 1개, 2개, 3개 시스템입니다. 별의 갯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아들이 알려줘서 이제야 알았습니다. 1개는 들러볼 만 하다 -worth a stop, 2개는 멀리 돌아갈 만 (우회할 만)하다 -worth a detour, 3개는 특별한 여행 삼아갈 만하다 -worth a special journey 입니다. 별의 갯수는 얼마만큼의 시간을 투자해 경험할 만한 식당인가를 알려주는겁니다. 아! 소리가 저절로 나옵니다. 별 3개 식당에 가려면 여행가듯 계획하고 준비해야 한다는게 금방 이해가 됩니다. 여행비를 마련하고, 날짜를 빼고, 누구와 갈지도 정하고…실로 worth a special journey 와 같습니다. 우리 자녀에게 교회는 미셸린 스타 3개가 될까요. 하나님을 의지하며 같이 걷는 인생이 실로 특별하고 아름다운 여행이라는 나의 간증이 그들에게 의미가 있을까요. 있기를 기도합니다.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을 부르고, 사랑하며 최선을 다해 살라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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